화엄사(華嚴寺), 천은사(泉隱寺)의 봄

DS3EXX 0 1,209


떠나자~!
벚꽃이 만발한 남녁땅으로...


내가 사는 대전엔 아직 벚꽃이 만개하지 않았다.
성질 급한 일부의 벚나무들만 이따금 꽃망울을 터트렸을 뿐이며,
거목으로 성장한 가로수들은 팥고물처럼
꽃봉오리가 터질듯이 한껏 부풀어 있다.

 

3732160784_old3n9TA_8e5f0fefc1e8663a7d69

 

만개한 남녁의 벚꽃이 보고싶다~!.


화창한 휴일 섬진강을 향해 차를 몰았다.
대진고속도로를 타고 한참을 내려가 함양jc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 타고 남원 방향으로 가다가
지리산ic를 나와서 다시 지리산 뱀사골 앞을 지나
노고단 입구의 성삼재를 넘어 전라도 구례땅으로 방향을 잡았다.

 

3732160784_jCaTh7y6_63c7d814e3fa4b31b59f

 

성삼재는 해발 1,100m가 넘는 높은 고갯길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차량으로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갯길이지 싶다.
눈이 내리는 12월부터 이듬해 2월 말까지는 위험하여
폐쇄되곤 한다.
성삼재휴게소 입구의 깎아지른 우측 벼랑 아래가 야생 산수유 단지로 유명한

지리산 온천지구인 산동땅이다.

그러나 연무가 탁해 앞이 보이지않아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3732160784_sdpNyZ0T_4476d06e3080655a6f0c

 

3732160784_G5FIYVMP_6fe6dbd2ec66b01d63c5

 

3732160784_X1ReH6DC_77afd4511d5cc556142d

 

성삼재를 내려가다가 200여 미터 앞의 사암재휴게소를 지나
굽은길 중간쯤 내려오면

나뭇가지 사이로 짙푸른 물이 출렁이는 저수지를 만나게 된다.
이 저수지를 끼고서
이정표가 안내하는 오른쪽 방향으로 돌아서면
천년(千年) 고찰(古刹) 천은사(泉隱寺)가 있다.

 

 

천은사 주차장에서

 

 

 

 

 

3732160784_jM8zs9u5_df995c3f6882c9608be7

 

3732160784_bJpBQcwa_f0ed0ecf766bf119128c

 

3732160784_MbiQN3FY_afc51016dc6976d9b263

 

3732160784_yuUdDrto_bd5a8f17acb36364c62d

 

3732160784_T5Qclyfk_e0a7c79212baee71ef06

 

천은사(泉隱寺)
천은사는 지리산 서남쪽에 있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고찰(古刹)이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승려 덕운(德雲)이 창건했다는 기록이 있다.
천은사(泉隱寺) 화엄사(華嚴寺), 쌍계사(雙磎寺)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 중 하나로 불리는데,
극락보전(極樂寶殿) 앞뜰에 있던 샘물이

감로수(甘露水)와 같다고 하여 "감로사(甘露寺)"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사찰은 창건 이래로 여러 차례 소실과 중건을 반복 해오다가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또 소실된 것을 숙종(肅宗) 때 중건했는데
그 사이 샘이 말라버리자,
절이름을
샘이 숨어버렸다는 뜻의 "천은사(泉隱寺)"로 바꿔버렸다고 한다.

 

3732160784_NmAG36vV_b717cfaaf3d65c3a7db1

 

3732160784_is1I2Oon_f0db3f4356adb4b7c888

천은사(泉隱寺)

 

3732160784_b2h0pVoG_b9962838fe66191b3936

천은사 저수지

 

3732160784_2ErmXKFS_d55f28b676457a7696f4

절 입구의 다리에서 바라보는 저수지 풍경은

시원한 바람과 함께 압권이다.

 

3732160784_KapcMwV9_5e3b09c787f41053424a

 

3732160784_hDOfmdb3_05b3d78c7958d513f3b8

세상에~! 거짓말 조금 보태서

내 키보다 더 큰 잉어들이 다리밑에 모여 노닐고 있다.

 

3732160784_wc8rCsTd_c4b7629b0d52d093b39e

 

3732160784_zsMc2UY0_30c367192573da4b5ba8

곱게 핀 꽃잔디

 

3732160784_7KimUtJE_30f354c9f05d712f66ff

 

3732160784_Q5EyhgiL_e854b2468d1c94d5691d

 

3732160784_4YLp9eiJ_6115aa9c65b41577c10e

 

3732160784_UX6xRs5D_fa3b0228caec2312432b
천은사의 명물 수홍루(垂虹樓)

 

3732160784_qfSCJhyb_9b92233e286b6da64bbb

천은사에서 가장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시원한 계곡과 짙푸른 저수지를 함께 바라볼 수 있는 곳이며

아치형 석교 위의 정자(亭子)가 멋스러운 운치(韻致)를 더한다.

 

3732160784_Z7d1CYH3_0794f99a85472651c792

 

3732160784_f7AiyxKq_5f9d7e2b681eab00db9a

마치 수국을 보듯

가지 가득 소담스런 꽃송이들이 주렁주렁 열렸다.

 

3732160784_F8jeop9Q_c4aff67dbbd5ede60d89

 

3732160784_WExvJM1r_03532543ffb3a4ba9480

 

3732160784_SZ1AYNUT_04d1bc113574db559122

 

3732160784_A6TzJGEk_b5de06793cd60681f294

 

3732160784_MZ3AiqEI_259a854b4f13b81fa93e

 

3732160784_ib9CQ4p8_0b1334803646c499648e

 

3732160784_QNqS158I_cab6a61344e1380e6352

 

3732160784_OrswcoyK_395be9b4343ea2770e78

 

3732160784_6njlHebU_0e04ef1a6114fa703fdc

 

3732160784_jiDO30EW_8cefc0bd3905d346c1ef

천은사를 나와 구례로 내려가니

드넓은 청보리밭이 펼쳐지고 가로수마다 벚꽃이 만개해 장관이다.

 

3732160784_gZsuvk1Q_55fe15426b8a58fb99ab

 

3732160784_GfCT681M_3174020747e73368402a

 

3732160784_wYvt2UCm_670711ab2caf6dda758a

화엄사로 가는 길

 

3732160784_zd9q6ABY_4c82b195dac4b7a14af2

 

3732160784_7uSnb0qZ_98705049eb74d2e9d15e

화엄사 매표소

 

3732160784_g0RNAJxH_00538d5dbefdf0a7bc76

 

3732160784_4FWJdVec_94e922cdef184ed8139e


화엄사(華嚴寺)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화엄종(華嚴宗)"을 선양하던 중심 사찰이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인도에서 온 연기조사(緣起祖師)가 세웠다는고 하는 기록은 여러 문헌에 전하나

창건 연대는 제 각각이라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선덕왕(宣德王) 때 자장(慈藏)이 증축하고,
문무왕(文武王) 때에 의상(義湘)이 장륙전(丈六殿)을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 기록은 사실과 다른 허구라는 것도 후에 밝혀진다.

 

3732160784_p83H9qVM_f0da78d76165905940c5

 

그간 논란이 많았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당시에는 백제(百濟) 땅에 속해있던 화엄사(華嚴寺)를
신라의 승려인 자장(慈藏)이 과연 중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점과,
건축양식으로 보아도

현존 화엄사(華嚴寺)의 석조물들이 모두 8세기 후반부터 9세기에 걸쳐 조성되었다고 하는 점 등이

기록과 서로 맞지 않는다.
또 서기 797년 번역된 정원본사십화엄(貞元本四十華嚴)을
의상대사(義湘大師)에 의해 석각(石刻)되어 화엄사에 세웠다고 하는 것 또한
이치에 맞지않아 그간 꾸준한 의문이 제기되어 왔었다.

 

3732160784_WLmUfs28_4d017495b9184bbe9ed7

 

의상대사(義湘大師)는 신라(新羅)의 승려로
서기 625년(진평왕 47)에 태어나 77세의 장수를 누리다 서기 702년(성덕왕 1)에 입적했다.
702년에 돌아가신 분이

95년 후인 서기 797에 비석에다 화엄경을 세겼다~??.
헐~~~!

 

3732160784_OrEt9FvB_832c54e8e938fbcfacce

 

이런 의문들이 꾸준하게 제기되다가 1978년에

신라 경덕왕대(景德王代)에 제작된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新羅白紙墨書大方廣佛華嚴經)"이라는
긴 이름의 화엄경(華嚴經) 필사본(筆寫本)이 발견됨으로써
모든 의문점이 풀리게 된다.
이 필사본(筆寫本)의 발문(跋文)에 의하면,
연기조사(緣起祖師)는 황룡사(皇龍寺)에 적을 둔 승려였으며
그는 서기 754년(경덕왕13) 8월부터 화엄경(華嚴經)의 사경(寫經)을 시작하여
이듬해 2월에 완성시켰던 실존인물임이 밝혀진다.
"사경(寫經)"이란 필사(筆寫)라고도하는데 원본(原本)을 베껴쓰는 것을 말한다.

당시는 인쇄술이 없었기에

중요한 문서나 책들은 전부 원본을 베껴쓰는 것이 일상이었다.

 

3732160784_TSL6INJD_93972f55d07f0d535f1d


그리하여 창건 연대가

신라 제 24대 진흥왕(眞興王) 때가 아닌,
제35대 경덕왕(景德王) 때라는 사실이 명확하게 밝혀진다.

 

3732160784_3ZpUjSCQ_c2cea3595ad539c4e9ef


화엄종(華嚴宗)의 중심사찰이던 이 절에는

창건이래로 많은 고승들이 머물면서
창사(創寺) 이념인 화엄사상(華嚴思想)의 구현을 위해 정진한 도량이며

지금도 여려 스님들이 수행 정진중이다.

 

3732160784_Cvtw61Ak_7028bff0ff64db576913

 

화엄(華嚴)은

부처의 깨달음에 대한 오묘함을 나타낸 것이며,
그 깨달음의 내용과 세계를 정리한 것이 "화엄경(華嚴經)"이다.

그러나 그 내용이 방대하고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기에 한마디로 이것이다 라고 설명하기가 어렵다.

 

3732160784_Ln5fFYqm_b5c5f1fc7d7ec1e0967f

 

3732160784_dYQjBqpT_f80bb4bf0a872349f409

각황전(覺皇殿)

국보 제67호로 지정된 건물이며

본래 이름은 장육전(丈六殿)이었다고 한다.

부처의 몸을 가리켜 장육신(丈六身)이라고 하는데, 부처를 모신 법당을 의미한다.

 

3732160784_uTogEzCv_b766b1409d3fef4cae71

 

3732160784_bdS9XNJZ_11c194ebe9142b17729f

대형 누대(樓臺)인 보제루(普濟樓)에 올라 내려다보는 풍경

 

3732160784_57BWHQ46_b2e66480c3711b71804a

 

3732160784_E8UlYHPo_d39ac669d40a2c79aede

역시 보제루(普濟樓)에서 바라보는 대웅전(大雄殿) 모습이다.

 

3732160784_QNl3kzun_60b62cf8a9d3f6b69482

서오층석탑(西五層石塔)
보물 제133호. 높이 640cm. 2중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이 놓여 있는데 기단과 탑신부 표면에
신장상(神將像)이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서탑을 1995년에 해체하여 보수했는데,
이때 진신사리와 더불어 47점의 유물이 나왔다.
그 가운데는 신라시대에 조성된 필사본 다라니경과 불상을 찍어내는 청동불상주조틀 등이

탑신에 들어 있었다.

 

3732160784_ium8Lwqp_cbf8452cf04638dd093a

서오층탑 뒤에 작게 보이는 탑이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이다.
보물 제132호로 지정되었다.
9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통일신라시대 석탑 가운데 보기 드문 5층석탑의 한 예로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3732160784_Ttzxo917_d91f7e80dd8baa2ae5b4

석등(石燈)

국보 제12호인 각황전 앞의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보이는
높이 6.36m나 되는 거대한 석등은
8각의 하대석(下臺石)이 병(甁) 모양의 간석(竿石)을 받치고 있다.
중간에 띠를 둘러 꽃무늬를 연이어 새긴 것으로 현존하는 국내 석등 중에서 가장 크며
통일신라시대의 웅건한 조각미를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3732160784_zNBvmL8f_ab57a7b6027423ed1414

세월과 함께한 홍매화(紅梅花)

벌써 꽃이 지고 있었다.

 

3732160784_BQzrEp3G_f7a0047abb6fe6eaee00

각황전 앞 석등

 

3732160784_XbR0GM6I_4d1a39ac22ba9793d963

적멸보궁(寂滅寶宮))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사찰에 있는

주 법당(法堂)이다.

 보통 법당 안에는 기단만 있고 부처상이 없다.

통도사(通度寺) 적명보궁처럼 부처는 사리를 모신 법당 밖의 사리탑이 대신한다.

 

3732160784_DC04gI82_20c7643dd51960a87a9e

 

화엄사(華嚴寺)는 우리나라 화엄경(華嚴經)의 본산이다.

이 화엄사상(華嚴思想)은

초기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중심사상이었다.

 

3732160784_DXELyh6K_3ad4c6203054b7f1613e


29살에 출가한 붓다가 35세인 기원전 589년

음력 12월 8일,
부다가야의 보리수 나무 아래에서

"대각(大覺)" 즉 완전한 깨달음을 얻고서
첫 제자에게 최초로 설법한 것이 화엄경(華嚴經)이라는 설이 있다.
 

3732160784_PrNGesqk_45f217b337a414c81b59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화엄경은 대승불교의 중심이 되는 경전인데...
붓다가 처음 설법한 것이 화엄경이라는 것은
논리(論理)나 이치적(理致的)으로 전혀 맞지 않는다고 보고있다.

왜냐하면

화엄경(華嚴經)은 부처가 열반에 들고 나서 체계화 된 경전이기 때문이다.

 

3732160784_C0b329Gi_de96684b3466c4ef9e3e

 

여기서 잠시,
이해를 돕기 위해

"대승(大乘)""소승(小乘)" 불교(佛敎)을 간략하게

비교해보고자 한다.

이 비교는 단순한 비교일뿐이지 꼭 명확한 구분이 아님을 미리 밝혀둔다.

 

3732160784_kEgxzO86_e0209c42b0738ecdc700

 

소승불교(小乘佛敎)와 대승불교(大乘佛敎)의 큰 차이는
어떻게 불도(佛道)의 길을 가는가 하는 문제이다.
즉 자신의 해탈(解脫)을 내세우며 그것을 근본 교리(敎理)로 받아들여 행하는 것은

소승에 가깝다,
소승이라는 말은 "작은 수레"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작은 수례에는
극소수의 몇 명만 타게 되는데,

이를 소승(小乘)이라고 한다.
여기서 승(乘)은 탈 승으로 "수레"를 의미한다.

 

3732160784_p2FVMUDS_29b3732e22111712e8f1

 

그리고 대승(大乘)이라고 하는 것은 "큰 수레"를 의미하는데
큰 수레에는 많은 사람들이 탈 수 있기에 나와 다른 사람들 즉 중생(衆生)과 함께 하는 것을
대승(大乘)이라고 한다.

 

3732160784_qw3mTSCA_f92d7c3a1093cd6e8f45

 

그런데 소승이다, 대승이다 하는 것은

부처님이 열반하시고 난 후,
승녀들이 점차 교리(敎理
)에 매달리면서

스스로를 위한 정진에만 노력하다보니 대중들로부터 불교(佛敎)가 멀어지게 된다. 

 

3732160784_7rWE4NyU_697414d9a84019a00750

 

그래서 모두가 함께 하는 새로운 불교(佛敎) 교리(敎理)가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는데
이것이 대승불교(大乘佛敎)의 시작이다.

그런고로 대승은
이전의 소승보다 더욱 아량(雅量)이 넓어져
결혼을 한 승려라도 청정한 믿음을 지니면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3732160784_r36D9U5Y_a8da4e8cfa756b668e6c

 

즉 소승(小乘)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중심의 해탈(解脫)을 위해 정진하는 것이 주이며
대승(大乘)은
자신의 해탈(解脫)과 함께 중생구제(衆生救濟)에도 함께 노력한다는 점이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3732160784_ZkbPViDz_c3c45971b88050196b79

 

소승불교라고 하는 호칭은

나중에 대승불교에서 가져다 붙인 것이므로
소승불교 승려들은 소승(小乘)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
소승은 따지고 보면 근본적(根本的)인 불교라고 해야 옳은 말이다.
 

 

3732160784_b4GIKDnL_4e9e6fe8cc5b96583037

 

따라서 소승불교(小乘佛敎)가 원래의 불교 교리이며,
대승불교(大乘佛敎)는 소승에 대한 반감으로

나중에 나온 교리로
중국에서 도교(道敎)와 자연스럽게 섞여 한국, 일본 등으로 퍼져 나갔다.
미안마, 태국, 스리랑카 등 동남아로 퍼져나간 불교는 소승불교계통라고 보면

큰 오류는 없으리라고 본다. 

 

3732160784_RAlNGvrw_f9ca0bfbfe776f8d3d1c

 

3732160784_lMjRHf21_19c3a502e795c1f8c167

 

3732160784_Erd5lJaK_740e67cf34d4d894c328

 

3732160784_XjroV3Ux_77eac108e65142f847bb

 

3732160784_D9Ks1yB3_a2b4275617445f6627d9

 

3732160784_XPDHYs3e_19991767323768647f74

 

3732160784_I4S72xmG_9d787f8fa59854e0edd3

 

3732160784_hg9y6O5I_66caafba299afdba5d49

 

남녁은 온통 벚꽃 천지였다.

눈이 부시도록 새하얀 벚꽃과 샛노란 개나리와 진달래 등 꽃들을 원없이 보았다.

해마다 이맘때면 늘 남녁으로 봄꽃을 찾아 여행을 떠나곤 했었다.

남녁에는 올해도 어김없이 봄꽃이 만발했다.

천년고찰 천은사(泉隱寺)와 화엄사(華嚴寺)를 중심으로 돌아보며 남녁에서 만끽한 봄꽃여행은

한동안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감동으로 남을 듯하다.

 

Comments

최신 등록글
글이 없습니다.
페이스북에 공유 트위터에 공유 구글플러스에 공유 카카오스토리에 공유 네이버밴드에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