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寺刹)
"불국사(佛國寺)"
그곳에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本寺)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의 기록에는 김대성(金大城)이 현세(現世)의 부모를 위해서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적고 있다.
그러나 이 절은
서기 75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23년 후인 서기 774년 혜공왕(惠恭王) 10년 12월에 완공을 했는데,
그가 생애(生涯)를 마칠 때까지 완공을 보지 못하였다.
그 뒤 국가(國家)에서 완성을 시켰다고 한다.
따라서 불국사(佛國寺)는 김대성(金大城) 개인의 원찰(願刹)이라기보다는
국가의 사찰(寺刹)로 건립되었다는 설(說)이 더 설득력(說得力)이 있다.
김대성(金大城)이 창건한 이 후
임진왜란(壬辰倭亂) 전까지 이 절은 무려 9차례의 중창(重創) 및 중수(重修)를 거쳤다고 전해온다.
현재의 모습은 1970년의 대대적인 복원공사에 의해 이루어진 모습이다.
절 입구에서 만나는 그림같은 못...
구품연지(九品蓮池)
서방(西方) 극락정토(極樂淨土)를 모방하여 만들었으며,
줄여서 그냥 연지(蓮池)라고 부르기도 한다.
청운교(靑雲橋)와 백운교(白雲橋)를 오르면 자하문(紫霞門)이 있다.
자하문(紫霞門)이란 붉은 안개가 서린 문(門)이라는 뜻으로
이 문(門)을 지나면 극락세계(極樂世界)가 나온다.
좌측에 보이는 계단이 연화교(蓮華橋)와 칠보교(七寶橋)이다.
안양문(安養門)으로 오르는 계단으로,
아래쪽 10계단이 연화교(蓮華橋)이고, 위쪽 8계단이 칠보교(七寶橋)이다.
대응전(大雄殿) 앞 양 옆으로는
길다란 회랑(廻廊)으로 연결하여 편리함과 웅장함을 더했다.
무설전(無說殿)
대웅전(大雄殿) 바로 뒤에 있는 무설전(無說殿)은 불국사(佛國寺)의 여러 건물 가운데 가장 먼저 지은 건물로 알려진다.
서기 670년(문무왕(文武王) 10년에 이 건물을 지었다.
문무왕(文武王)은 의상(義湘)과 그의 제자 오진(悟眞)과 표훈(表訓) 등
몇 명의 대덕(大德)에게 화엄경(華嚴經)의 강론(講論)을 맡기기도 했었다.
이 건물도 1593년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 불탄 뒤
서기 1708년 숙종(肅宗) 34년에 중건(重建)하여 서기 1910년 이전까지 보존되었으나,
그 뒤 허물어진 채 방치되었다가 다시 서기 1972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전한다.
무설전(無說殿) 옆 회랑(廻廊)
다보탑(多寶塔) 국보(國寶) 제20호
삼층석탑(三層石塔)인 석가탑(釋迦塔) 국보(國寶) 제21호
이 두 탑은 불국사(佛國寺)의 사상(思想) 및 예술(藝術)의 정수(精髓)로 불린다.
법화경(法華經)에 근거하여 세워진 탑으로
영원한 법신불(法身佛)인 다보여래(多寶如來)와 보신불(報身佛)인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이 이곳에 상주한다는
깊은 상징성(象徵性)을 가진 탑(塔)이다.
따라서 불교(佛敎)의 이념(理念)을 이 땅에 구현시키고자 노력한
신라(新羅) 민족혼(民族魂)의 결정체이기도 하다.
석가탑(釋迦塔) 내에서 발견된 유물(遺物)인
국보(國寶) 제126호 불국사(佛國寺) 삼층석탑(三層石塔)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 중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은
국립중앙박물관(國立中央博物館)에 보관되어 있다.
지난 학창시절 수학여행 때 와서 보곤 40여 년이 지난 오늘에 다시 오니
감회(感懷)가 새롭다.
당시 어린 나이에도 아름다운 절이란 생각을 했었는데...
단풍 든 서산으로 붉은 해가 뉘엿뉘엿 기울어가는 이 아름다운 가을날...
가만가만 둘러보는 산사(山寺)의 모습은
참으로 곱고 아름답다.
처음 불국사(佛國寺)를 창건할 때는 저 구품연지(九品蓮池) 가득 절 모습이 잠겼다고 하는데...
지금은 우거진 숲에 가려 보이질 않는다...
그래도 아름답다...
빛 고운 단풍이 곱게 물들어가는 산사(山寺)의 문(門)을 나서며
경주(慶州)에서 둘쨋날이 저물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