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안후이 성(安徽省) 여행(旅行)
1,300년의 역사(歷史) 깊은 마을... "당모촌(唐模村)"
황산시(黄山市) 휘주구(徽州區)에 속한 오래된 마을이다.
황산 입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고촌(古村)으로
당(唐)나라 때 월국공(越國公) 왕화(汪華)의 태증조부(太曾祖父) 숙거(叔举)가 처음 마을을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송(宋)나라를 거쳐 원(元)나라를 지나 명(明)나라부터 청(淸)나라 때는 매우 번성하였던 마을로
황산시(黄山市) 주변에 자리한 4대 고촌(古村) 중 한 곳이다.
자그마치 1,300년의 세월을 머금은 마을이다.
지금도 현지인들이 대를 이어 살고 있으며
당(唐)나라 촌락의 모습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다고 하여 "당모(唐模)"라는 이름으로 불리운다.
국가급 여유경구(國家級 旅遊景區)... 당모(唐模)
A가 5개나 붙은 경구(景區)는
중국(中國) 정부(政府)에서 직접 관리하는 문화재(文化財)로,
우리나라의 국보급(國寶級)이나 보물급(寶物級) 문화재(文化財)에 해당한다.
당모촌(唐模村)으로 가는 길
마을 입구에 600년의 세월을 살고 있다는 고목(古木)
마을 입구에는 600년의 세월을 살고 있다는 고목(古木)과
명(明)나라 때 황제(皇帝)가
효자(孝子) 숙거(叔举)를 기리기 위해 하사하였다는 패방(牌坊)이 높이 솟아 위엄을 한껏 뽑내고 있다.
패방(牌坊)은 마을 입구에 세워져 마을의 위엄(威嚴)을 나타내기도 하고,
마을의 역사(歷史)와 마을에서 태어난
효자(孝子)나 효부(孝婦) 그리고 충신(忠臣)들을 기려 후세(後世)에 전하는 역활을 한다.
우리나라 마을 어귀에 세워진 홍살문과 같다고 보면 된다.
당모촌(唐模村)에 세워진 패방(牌坊)은
그 크기도 크기려니와 웅장함과 위세(威勢)가 대단했다.
효(孝)... 효자(孝子)의 후손(後孫)이 대를 이어 사는 집으로
집 안에 커다란 못이 있다.
이 아름다운 못은
마을을 처음 조성한 숙거(叔举)가 늙으신 어머니를 위해 조성한 못이라고 전해온다.
저장성(浙江省) 항저우(杭州)에 있는 아름다운 "시후(西湖)" 즉 서호를 어머니가 그토록 보고싶어 했으나,
항저우(杭州)까지 천리길을 여행하기에는 너무 늙고 쇄약한 어머니를 위해
집 안에 못을 파고 서호(西湖)와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는 "단간원(檀干园)"이라고 이름 짓고
삼담인월(三潭印月), 호심정(湖心亭), 백제(白堤), 옥대교(玉带桥) 등
서호(西湖)의 명물들을 차례로 따라 지었다고...
사람들은 단간원(檀干园)이란 이름 대신 그냥 서호(西湖)라 불렀다고 한다.
중국(中國) 전역에는
항저우(杭州)의 서호(西湖)를 본 뜬 이름의 서호(西湖)라는 호수(湖水)가 36개나 있다고 하는데,
그 중 가장 작은 것이
바로 당모촌(唐模村)에 있는 서호(西湖)로 너무 작아서 "소서호(小西湖)"란 애칭으로 불린다.
드넓은 마을 광장
마을 중앙으로는 이렇게 개울이 흐른다.
수세미가 물가를 따라 노오란 꽃을 피웠다.
당모촌(唐模村)의 건물들은 현재 명(明)나라와 청(淸)나라 양식이 많은데...
세월따라 약간 씩 변해 간 흔적들이다.
그러나 개울이라든가 건물의 위치나 골목 등은 고대(古代)의 모습 그대로 이며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고...
참으로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이기에 천 년이 넘는 세월을 내려왔겠지...
빨래터... 요즘도 간혹 빨래를 하는지 흔적들이 있었다.
시간이 멈춘 마을....
수많은 전란(戰亂)에도 이 마을은
황산 자락의 험난한 자연 요새(要塞)로 안전할 수 있었단다.
마침 중국의 어느 TV방송에서 나와 현주민을 상대로 인터뷰를 하는 모양이었다.
개울가를 따라 이어진 골목길에 길다랗게 이어진 간이 의자.
이것이 당(唐)나라 때부터 이어내려온 건축양식(建築樣式)이라고 가이드가 열변을 토한다.
물가라서 시원했다...
고색창연한 아름다움... 시간이 멈춰버린 마을...
부자가 뭔지... 가난이 뭔지도... 모를 것 같은 순박한 마을 사람들...
진(晉)나라 말기에 살았던 전원시인(田園詩人) 도연명(陶淵明)이 마음속에 그렸던 도원경(桃源境)의 세상이
이와 같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느린 걸음으로 생각없이 걷고 싶은 마을이다.
문명(文明)의 빠른 발달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빠른 문명의 발달은 마음의 여유를 앗아 가기에
가슴은 오히려 삭막해진다...
이 커다란 집은 요즘의 마을회관 겸 조상(祖上)을 모시는 사당(祠堂)이란다.
두 사람이 지나가면 어께가 맞닿는 좁은 골목길...
"내가유~~ 정신없이 설명한 거 다 알아들었쥬~?"
"물러~ 다 이저부렸당께~~"
"환장혀 유~~"
오리를 잡아서 소금에 절여 기름을 쏙~ 뺀 것인데,
관광객들에게 파는 것이라고...
그런데 이상한 것은 파리가 달려들질 않는다...
거참~~ 파리도 짠 음식은 싫어하나~??
구멍가게
중국도 그놈의 휴대폰 때문에 모가지 다 휜다.
길을 가다가도 하도 들여다 봐서 병목현상이 날 정도이다.
척 봐도 한눈에 부자가 사는 집이란 걸 알 수 있는 집이다.
벽은 무조건 흰색으로 칠하고 지붕이나 담장 위는 전부 기와를 언졌다.
그리고 집 양 모서리는 대패로 밀어올린 듯 반듯하게 위로 높이 쌓아 올린다.
이것이 청(淸)나라 민가(民家) 전통양식의 특징이다.
집은 口자로 짓고 하늘을 올려다보는 천장(天障)은 엄청 높다.
그리고 사방으로 방들과 창고가 이어져 있다.
밖을 내다보는 창문은 얼굴을 내밀기도 어려울 정도로 매우 작으며 그것도 집 안에 두어 게 뿐이다.
이 마을 최고 부자집의 생김새가 그랬다.
마을을 나왔다...
중국 정부에서 지정한 "중국역사문화명촌"이란 간판이 커다랗게 걸렸다.
사람들은 고단한 세상살이를 벗어나고자 이상적(理想的)인 세상을 꿈꾸곤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살기도 하는데...
시간이 멈춘 듯한 당모촌(唐模村)에서
사실이지 두어 달만이라도 살다 가고픈 마음도 들었다...